창녕장씨 분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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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성(張友誠 : 1417-1497) : 승지공파 파조이며, 자(字)는 문회(文會)이고, 145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의(禮曹參議), 승정원 도승지(都承旨)에 이르렀다. 공의 성 품은 공검(恭儉)하고 정직하였으며, 문장과 덕행이 당세에 이름 높았다. 공의 행적 이『창녕읍지』에 실려 있다. 묘소는 창녕군 부곡면(釜谷面) 부곡촌(釜谷村) 뒷산 에 자좌(子坐)하고 있다.
장중성(張仲誠 ; 1445-?) : 전한공파의 파조이며, 자는 보인(輔仁)이고, 1459년에 생원 (生員) 시험 입격, 다시 146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전한(典翰)에 이르렀다. 문장과 덕업이 뛰어나서 한 세대에 명망 높았고,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을 비롯하여 姜希孟(私淑齋), 徐居正(四佳), 成俔(?齋) 등과 교분이 있었다. 묘 소는 김해시 생림면(生林面) 나전(羅田)의 작약산(芍藥山)에 곤좌 (坤坐)하고 있다.
장효성(張孝誠 : 1454-1515) : 참봉공파 파조이며, 벼슬이 참봉(參奉)에 이르렀다. 묘소 는 밀양군 동면(東面) 안태산(安泰山)에 자좌(子坐)하고 있다.
장여필(張汝弼 : 1464-?) : 맥계공파 파조이며, 자는 성보(聖輔)이고, 벼슬이 부사(府 使)에 이르렀다. 묘소는 창녕군 북쪽 안심촌(安心村) 뒷산에 자좌(子坐)하고 있다.
장익(張翼) : 부사공파 파조이며, 벼슬이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묘소는 창녕군 부곡 면 부곡촌(釜谷村)의 뒷산에 자좌(子坐)하고 있는데, 그 곳에는 선대의 묘소가 많 고 그 위차(位次)를 알지 못하여 현재 제단을 설치하여 봉사(奉祀)하고 있다.
장관(張寬 : 1373-?) : 창산군파 파조이며, 자(字)는 사유(士裕)이고, 벼슬이 밀직부사 (密直副使), 한성좌윤(漢城左尹)에 이르렀다. 조선개국원종공신(朝鮮開國原從功臣) 으로 창산군(昌山君)에 봉군되었는데, 그 공신녹권이 현재 국가문화재 보물 제726 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소는 전란(戰亂) 중 실묘(失墓)하여 현재 제단을 설치하여 봉사하고 있다.
장중성(張仲誠 ; 1445-?) : 전한공파의 파조이며, 자는 보인(輔仁)이고, 1459년에 생원 (生員) 시험 입격, 다시 146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전한(典翰)에 이르렀다. 문장과 덕업이 뛰어나서 한 세대에 명망 높았고,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을 비롯하여 姜希孟(私淑齋), 徐居正(四佳), 成俔(?齋) 등과 교분이 있었다. 묘 소는 김해시 생림면(生林面) 나전(羅田)의 작약산(芍藥山)에 곤좌 (坤坐)하고 있다.
장효성(張孝誠 : 1454-1515) : 참봉공파 파조이며, 벼슬이 참봉(參奉)에 이르렀다. 묘소 는 밀양군 동면(東面) 안태산(安泰山)에 자좌(子坐)하고 있다.
장여필(張汝弼 : 1464-?) : 맥계공파 파조이며, 자는 성보(聖輔)이고, 벼슬이 부사(府 使)에 이르렀다. 묘소는 창녕군 북쪽 안심촌(安心村) 뒷산에 자좌(子坐)하고 있다.
장익(張翼) : 부사공파 파조이며, 벼슬이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묘소는 창녕군 부곡 면 부곡촌(釜谷村)의 뒷산에 자좌(子坐)하고 있는데, 그 곳에는 선대의 묘소가 많 고 그 위차(位次)를 알지 못하여 현재 제단을 설치하여 봉사(奉祀)하고 있다.
장관(張寬 : 1373-?) : 창산군파 파조이며, 자(字)는 사유(士裕)이고, 벼슬이 밀직부사 (密直副使), 한성좌윤(漢城左尹)에 이르렀다. 조선개국원종공신(朝鮮開國原從功臣) 으로 창산군(昌山君)에 봉군되었는데, 그 공신녹권이 현재 국가문화재 보물 제726 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소는 전란(戰亂) 중 실묘(失墓)하여 현재 제단을 설치하여 봉사하고 있다.
승지공파 : 주로 영남 각지에 거주하며,『詩經』의 ‘효자 다함없이 영원토록 그와 같은 류(類)를 내리네’(孝子不? 永錫爾類)라는 정신을 계승, 실천하여 세상에서 ‘6 대에 걸쳐서 8효자가 배출된 가문’이라 칭송하고 있는 것이 유명하다. 한편 도덕 을 높이고 덕을 숭상(道尊德崇)하는 법도있는 가문(法家)의 전통을 수호하고 있다.
전한공파 : 영남에 거주하며, 학문을 독실히 하고 의리를 좋아하는(篤學好義)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특히 영남의 예학파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 문인 가운 데 참봉 휘 익기(益棋), 우방공(于房公) 휘 익규(益奎) 형제가 유명하다.
참봉공파 : 영남에 거주하며, 순실(純實)하고 돈후(敦厚)한 가문의 전통을 잘 계승하 였다.
맥계공파 : 영남 각처에 거주하며, 사장(詞章)과 조행(操行)의 가문 전통을 계승하였 다. 송탄공(松灘公) 휘 응두(應斗)와 도촌공(道村公) 휘 경백(警百)의 문장과 학문이 유명하다.
부사공파 : 주로 호남 고흥(高興)에 거주하며, 신의(信義)와 돈목(敦睦)한 가문의 전 통을 계승하였다.
창산군파 : 호남의 광주(光州), 정읍(井邑) 등지에 거주하며, 선대를 추모하고 성실(誠 實)하게 살아온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파조(派祖) 창산군의 ‘朝鮮開國功臣錄 券’이 현재까지 전해져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것은 전통 가문의 수호적 측면 에서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