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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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자
    승지공파의 효자
    먼저 승지공파의 효자 가운데 만은공(晩隱公) 휘 순수(順受)의 자손 계통 으로 6대에 걸쳐서 8효자가 배출된 것이 주목되고, 다음으로 창산군파의 양대(兩代) 효자를 들 수 있다. 특히 6세 8효의 효행에 대한 은전(恩典)을 요청한 고문서 소지류(所志類)가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경상감사 및 창녕 현감에게 올린 1827, 1828, 1844, 1847, 1879년 등의 자료)
  • 효자
    장승길(張承吉: 1566-1627)
    자는 선유(善裕)이고 호는 동암(東巖)인데, 조산 대부(朝散大夫)에 올랐으며, 품성이 순선(純善)하고 부모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효천(孝薦)되었고 석류록(錫類錄)이 있다.
  • 효자
    장지백(張之白: 1595-1661)
    자는 사호(士皓)이고 품성이 괴위(魁偉)하고 부 모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효천(孝薦)되었고, 세상에서 고행처사(高行 處士)라 칭송되었으며, 석류록(錫類錄)이 있다.
  • 효자
    장시행(張是行)
    효행으로 증직(贈職), 정려(旌閭), 서원향사(書院享祀)되다. ⇒ 서원 향사편 참조
  • 효자
    장익정(張翼禎)
    효행으로 증직(贈職), 정려(旌閭), 서원향사(書院享祀)되다. ⇒ 서원 향사편 참조
  • 효자
    장 속(張 涑: 1687-1764)
    자는 중광(仲光)이고 효성이 지극히 높았다.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의 장계(狀啓)와 감영(監營)의 장계로 급복(給復)의 은전이 내려졌고, 석류록(錫類錄)이 있다
  • 효자
    장 만(張 滿: 1700-1742)
    자는 겸숙(謙叔)이고 효성이 지극히 높았다.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의 장계(狀啓)와 감영(監營)의 장계로 백형 휘 속(涑)과 함께 급복(給復)의 은전이 내려졌고, 석류록(錫類錄)이 있다
  • 효자
    장한보(張漢輔: 1737-1796)
    자는 여순(汝順)이고 선대의 정훈(庭訓)을 계승하여 효성이 지극히 돈독했으며, 친상(親喪)에 3년복을 더 입는 등, 그 효심에 하늘이 감동하여 사람을 움직였고(感天動人), 석류록(錫類錄)이 있다
  • 효자
    장한필(張漢弼: 1742-1789)
    자는 제용(帝用)이고 부모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친상(親喪)을 입고 여묘(廬墓) 살이 3년간에 애훼(哀毁)하니 도내 유림(儒林)에서 일제히 효천(孝薦)하였고, 석류록(錫類錄)이 있다.
  • 효자
    장재환(張再煥: 1808-1894)
    생원 휘 숙란(叔鸞)의 8세손이며, 자는 봉필(奉必)이고 호는 은암(隱菴)이다. 의정부 참정(參政)에 추증되었으며, 효행이 뛰어나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 효자
    장원호(張元昊)
    은암공의 아들이며, 자는 두명(斗明)이고, 호는 송포(松圃)이다. 벼슬이 의정부 참정(參政)에 이르렀으며, 효행이 뛰어나 정려(旌閭) 가 내려졌다.
  • 효자
    6세 8효 가계도
    6세 8효 가계도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承吉 之白 是行 翼禎
    (朝散大夫) (高行處士) (巖溪公) (淸溪公)

    翼禧 涑 漢輔
    (出系 叔父是孝后)

    滿 漢弼


    ※ 6세8효와 관련한 문헌 내용 소개

    지난 계묘년(1723)에 내가 창녕에 간 적이 있다. 즐영(櫛嶺:즐비한 고갯길)을 넘고 시냇물을 따라 내려가니 남쪽에 2개의 작설(綽楔)이 있었는데, 하나는 증 의금부도사(贈義禁府都事)인 장공각(張公閣 : 諱 是行)이었고 하나는 증 호조정랑(贈戶曹正郞)인 장공각(張公閣 : 翼禎)이었다.
    마침내 말(馬)을 몰고 마을로 가서 사람을 불러 물어보니, 부자(父子) 양세 정려(兩世旌閭)임을 알게 되었다. 이어서 증빙(證憑)을 해보니 창녕 선비 모두가 말하기를 “장씨로서 효행이 뛰어난 자가 어찌 다만 양세(兩世)의 정려(旌閭) 뿐이겠습니까? 5대에 걸쳐서 6효자가 있습니다.” 라고 하였으니 그토록 성(盛)했던가?
    한 도(道) 안에서 대(代) 마다 효행을 지극히 하였기에, 동시에 한 입으로 어질다고 하니, 내가 이에 탄복하여 말하기를 “증자(曾子)가 3대에 걸쳐서 행한 효행(孝行)이 천년동안 칭송(稱誦)되어 왔는데, 장씨(張氏)와 같은 집안은 그 옛날 사람보다도 더 많이 행하였도다.” 하고, 효자의 집을 방문하니 주인은 곧 중광(仲光: 휘 涑의 字) 씨였다.
    - 李弘离, 孝子昌山張公行錄에서 -

    ※李弘离(1701-1778) : 字 孟猷, 號 慵窩, 慶州人
    判書 良의 후손, 杜谷 熠의 6세손, 塤篪(鄭萬陽, 鄭葵陽) 兩先生 門人
    墓碣銘은 定軒 李鍾祥(1799-1870) 撰하였고,『慵窩先生文集』6권3책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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