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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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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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자
    장지백(張之白: 1595-1661)
    자는 사호(士皓)이고 품성이 괴위(魁偉)하고 부 모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효천(孝薦)되었고, 세상에서 고행처사(高行 處士)라 칭송되었으며, 석류록(錫類錄)이 있다.
  • 충신
    장승지(張承祉)
    참봉공의 증손이며, 자(字)는 희언(熙彦), 벼슬은 통덕랑(通 德郞)이다. 임진란(壬辰亂)에 창의(倡義)하여 사절(死節)하였으며, 사적이 『창녕읍지』에 실려 있다.
  • 충신
    장천장(張天章)
    부사공의 5세손이며, 자는 경윤(敬閏)이다. 선조 병자(1576) 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僉正),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역임하고 임진란(壬辰亂)이 일어나자 선조임금을 의주까지 호가(扈駕)하였고, 충무 공 이순신 장군 휘하의 옥포(玉浦) 전투에 참가하여 군공(軍功)이 있었다.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고 벼슬이 무승지(武承旨)에 이르렀으며, 사적 이『고흥읍지』와『호남절의록』에 실려 있다.
  • 충신
    장시헌(張時憲)
    무승지(武承旨) 휘 천장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판관 (判官)에 이르렀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선전관(宣傳官)으로서 남한산 성(南漢山城)에 호가(扈駕)한 공이 있다. 이 때 종형 시한(時翰)도 동행했 다고 하며, 사적이『고흥읍지』와『호남절의록』에 실려 있다.
  • 열녀
    손기후(孫起後)의 부인 장씨(張氏)
    임진란(壬辰亂) 때 열녀(烈女)이다.
  • 열녀
    조덕성(曺德成)의 부인 장씨(張氏)
    임진란(壬辰亂) 때 열녀(烈女)이다.
  • 열녀
    장재환(張再煥)의 부인 진씨(陳氏)
    열행(烈行)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 학문/문장
    장 제(張 足+齊)
    장간공의 현손이며, 고려 때 성균학생(成均學生)으로 등과하 여 부령(副令), 지제고(知制誥)에 이르렀다. 知制誥란 문장이 뛰어난 자에 게 임명하는 벼슬이다. 복재(復齋) 정총(鄭摠)의「復齋集」(6대손 鄭逑 編, 『西原世稿』1607年刊本 所載)을 보면 "宿鹽州觀音寺 見張副令제"라는 내용이 있어서 복재공(復齋公)과 교유한 사실이 확인된다.
  • 학문/문장
    장계증(張繼曾)
    ⇒ 문과 급제 편 참조
  • 학문/문장
    장계이(張繼弛)
    ⇒ 문과 급제 편 참조
  • 학문/문장
    장중성(張仲誠)
    ⇒ 파조 편 참조
  • 학문/문장
    장흔(張昕)
    승지공의 차남이며, 字는 여회(如晦)이다. 연산군 원년(1495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이면(李綿)의 진성수유집(珍城守遺集)을 보면 진성수 이면을 포함하여 합천군수 배자겸(裵子謙), 훈도 김팽조(金彭祖) 등과 가야산 해인사에 유람할 때 지은 公의 詩 1수가 전해지는데 다음과 같다.

    우뚝한 岩壁 천길 높게 웅장하고 淸川은 百尺쯤 깊구나. 孤壁千尋壯 淸川百尺深
    崔孤雲의 먼 옛적 발자취를 그대와 함께 와서 찾아보았네. 孤雲千古迹 來與子同尋
    산이 멀고 구름도 멀며 숲이 깊고 마을도 깊네. 山遠雲俱遠 林深洞亦深
    儒仙으로 놀던 때 이미 오래되었으니 遺蹟아득해 찾기 어렵네. 儒仙遊已久 遺蹟杳難尋
  • 학문/문장
    장응두(張應斗)
    맥계공의 손자이며, 자는 천기(天機)이다. 진사(進士)에 입격한 후 영천군수(永川郡守), 영해부사(寧海府使) 등 을 역임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 학문/문장
    장순수(張順受)
    ⇒ 문과 급제 편 참조
  • 학문/문장
    장익기(張益祺: 1569-?)
    전한공의 현손이며, 자는 덕경(德敬)인데, 참봉에 이르렀고,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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