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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마을앞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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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4-08-30 10:00 조회 2,1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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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최근 창녕군청과 관계기관에 보호수 지정을 의뢰하였으나 반려되었던 시치 마을 앞의 당산나무에


관련된 글입니다.


 


당산나무관련 역사


 


시치입구언덕에 우뚝 솟은 당산나무는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도 예사롭게 보지 않지만 유구한 역사와 전래되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주변의 공장건립으로 인하여 나무 바로 옆까지 이루어진 정지작업으로 인하여 고사의 위기에 놓여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당산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많지 않아 구전되는 자료를 문답형으로 간략하게나마 간추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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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호수로서 지정되려면 거대수라야 된다?


물론 나무의 크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볼품없는 바위 하나라도 그 얽힌 이야기와 역사가 중요하여 역사자료로 지정되기도 한다. 시치의 당산나무는 역사에 나오는 우국충절의 격전의 현장에서 유구한 세월을 많은 사연을 안고 꿋꿋하게 지켜왔다. 그냥 여타 거대수처럼 마을입구에 우람하게 위세만 자랑하는 나무가 아니다.


2. 추정되는 수령에 비해 나무가 왜 작나?


시치골짜기는 척박하다. 지대도 높고 물도 귀하다. 지하수 관정을 뚫으려면 최소 10회는 뚫을 정도로 수맥을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땅을 파보면 밑에는 퇴적암의 일종인 점판암으로 추정되는 청석이 나무주변에 있다. 시치 마을 우물도 마찬가지이다. 딱딱한 퇴적암이 지표밑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나무도 살기 어렵고 거대수로 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당산나무는 겨우겨우 긴 세월을 주민들의 보살핌 속에서 지내왔던 것이다.


 


3. 느티나무로서는 독특한 모양인데?


척박한 토양에서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뿌리가 노출된 것도 있다. 그리고 일반 느티나무와는 달리 지표면위에서 가지끼리 붙어 자르는 모습이다. 그래서 동체의 둘레는 수령에 비해 크지는 않고 지표면위에서부터 가지가 바로 벌어진 아주 희귀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전문가의 감정을 해봐야겠지만 느티나무 중에서도 아주 희귀한 생장을 보이는 것으로 이 자체만으로도 보호수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4. 그럼 그동안 나무의 관리는 어떻게 해왔나?


나무관리의 주체는 시치(안담)주민들이며 중마와 아랫마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이 성립될 때부터 1998년까지 매년 동제가 이루어져 왔으며, 장씨 문중에서 나무의 생장과 보호를 위해 자발적인 관리를 해 왔었다. 예를 들면


농번기의 힘든 일이 끝나면 동네 머슴들의 1주 휴가가 있었다 한다. 이때에는 매년 정기적으로 머슴들이 당산나무 밑에서 술을 받아 예를 표하고 암석 지반위에 힘겹게 자라는 나무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그동안 소실된 흙을 보충해주고 객토와 북을 돋우는 작업을 해왔었고 기후 변화에 따라 장씨 문중과 함께 수시로 나무를 돌봐왔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이후 사회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머슴들이 하지 아니하고 장 문중에서 수시로 나무를 관리해 왔었다. 최근 주민숫자의 급감으로 이제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결정적으로 공장이 들어선다며 파헤친 주변 토양으로 인하여 근근이 버텨오던 고목이 이제는 고사 일보 직전까지 갔으며, 벌써 일부는 고사가 시작되고 있는 현실이다.


 


5. 역사가 있어야 보호수의 가치가 있는데?


바로 인접한 대산성은 왜군의 북상으로 패퇴하던 우리 고을의 관군민이 남은 전력을 집중해서 창녕의 최후의 보루로써 시치를 활용하였다. 물론 화왕산성이 역사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지만, 대산성과 시치는 말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우리 조상들의 피와 얼이 면면히 흐르는 지역이다. 그리고 뒷산은 왕령산성이 위치하여 당산나무는 두 산성과 마을을 지켜주며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한 나무인 것이다.


당산나무 옆의 대산성에서는 신압 장군과 조진남, 노홍언, 장효원 등 현지 거주 선비들이 주축이 되어 대산과 그 인근에 목책산성을 쌓아 결사 항전한 내용은 역사자료에 있으며 현재 창녕공고 근처 억만리 고연정효절각에 그 내용을 담은 비석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동네를 묵묵히 지켜봐온 역사적 사실만 보아도 물 좋고 토질 좋은 다른 농촌 마을 앞에 위풍당당하게 위치한 거대한 정자나무와는 차별화 되는 사실이다.


 


6. 당산나무에 전해 내려오는 다른 이야기는 없는가?


1) 시치마을에는 예로부터 전염병이 들어오지 못하는 동네라고 했다. 호열자(콜레라)가 창궐할 때에도 시치역사상 한 번도 마을까지 전염된 경우가 없었다. 기타 큰 전염병도 당산나무가 지켜줘서 들어오지 못해서 모두들 신령스런 나무로서 모셨다고 하며, 남녀노소 모두들 병이 있으면 당산나무에서 제를 지냈다고 전해 내려온다.


2) 풍수나 특정종교인이나 또는 무속인, 도인 등 를 느끼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처음 방문 할 때에는 당산나무 앞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손이 떨린다던지, 신 내림 현상이나 빙의현상 등 특수한 현상이 생겨 정성을 들이거나 예를 표하고 나면 그것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마을사람들에게 더욱 정성을 들이고 잘 모시라고 조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온다.


3) 조선시대에는 나무를 손대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나무의 신령함을 모르는 사람이 밭에 그늘이 낀다고 나뭇가지를 전지하려고 하면 낫이 계속 부러지고 , 나무뿌리가 밭에 지장을 준다고 손을 대려면 모든 농기구가 부러져서 그 이후에는 누구도 나무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4)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나 민간신앙 행사를 할때에는 항상 당산나무에서 행해졌었다. 특히, 타지의 무속인들이 자주 왕래하며 제를 올려 왔으며, 드물지만 최근까지도 무속행사가 이루어져 왔었다.


5) 임진왜란 때 대산성 전투당시 전사하신 조상님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동제를 당산나무에서 지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구전되어 오므로 조상의 추모와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종합적인 의미로서의 동제가 이어져 왔던 것이다.


 


7. 당산나무에서 동제를 어떻게 지냈는가?


 


1) 시치마을에는 매년 각종 중요 절기(정월 대보름, 한가위)와 마을의 중요 제례 행사(묘사 등) 때에는 마을 뒷산 왕령산성 밑에 위치한 작은 암자( ‘정신집이라고 불렸음, 현재는 흔적만 있음)에서 먼저 제를 올리고, 재실 뒤에 위치한 큰 소나무에서 산신제를 올리고 당산나무에도 제를 정기적으로 지내왔었다.


제관은 주로 시치마을의 종가에서 2-3인이 주관이 되어 행해졌으며 최근까지 장두혁(1998년 작고)씨가 이어 왔었다.


2) 당산나무 동제는 마을의 가장 중요행사 중의 하나였으므로, 마을사람 남녀노소 모두 참석했었다. 그래서 제관들은 수일 전부터는 불필요한 바깥 출입을 삼가고 매일 목욕제계(沐浴祭戒)를 하면서 정성껏 제물을 준비하였으며, 아이들도 목욕을 시켜 깨끗하게 동제준비를 했다한다.


3) 그 외에 나라에 전염병이 돈다던지 문중이나 개인의 우환이 있을 때에는 비정기적으로 제를 올렸었다. 최근에는 원로들이 점점 줄고, 객지의 자식들 집에서 거주하므로 명절에만 동네에 사람이 보일 정도로 거주민이 급감하였다. 그래서 동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적으로 집안일로 제를 올리는 경우는 아직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산나무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으며, 아직도 원로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 공사가 시작된 후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나무를 보면서 고향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은 안타까움과 심지어는 두려움도 느끼는 사람도 있는 현실이다.


 


8. 당산나무와 공사가 무슨 상관있나?


위에 언급한 대로 암반지반위에 오랜 세월을 근근이 버텨온 것만 해도 느티나무 중에서 드문 예이며, 모양도 희귀하여 보기 힘든 것이다. 옛날부터 시치 마을 사람들이 나무에 지속적으로 적절한 토양과 수분 등 주변여건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어서 유지 된 것을 공장 건립공사를 한답시고 주변 땅을 파헤치는 바람에 수맥공급이 지장을 받게 되고 주변토양에서의 영양공급에 차질이 생겨 황폐화가 진행된다고 판단된다.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보호수 지정도 중요하지만 사람부터 살리자는 말이 있듯이 나무부터 살리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


그리고 공장설립에도 우호적으로 대하던 주민들과 출향인사들이 마음의 고향이 파헤쳐지는 주변여건과 나무를 보면서 점점 더 실망감과 분노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등 향후 사태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인 상황이므로 관계 관청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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