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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진근 작성일 14-08-29 14:44 조회 1,857회 댓글 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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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간공께서는 원나라말 곧 중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외교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정시인이었음을 소개한 바 있읍니다. 아울러 유능한 행정가였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역시 장간공의 과승평군(過昇平郡)이란 시 한 편을 소개드릴까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동문선(東文選)에 전재된 위 과승평군은 홈피에서는 연자루란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霜月凄凉燕子樓
郎官一去夢悠悠
當時座客休嫌老
樓上佳人亦白頭
서릿발 같이 차가운 달 빛 처량한 연자루
님이 한 번 떠나신 후 꿈속에 아른 거리네
그 때 자리 함께한 나느네 늙었다 허물마소
다락 위에 가인 또한 허옇게 머리 세었구료
(필자역)
동문선 제 20권 칠언절귀편에는 위 시를 싣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위 시를 짓게 된 경위에 대하여 소위 제주(題註)가 있다.
이에 따르면 "일찌기 이 고을(승평군을 가리킴)의 원님으로 근무한 바 있던 태수 손억(孫億)이 관기 호호(好好)를 사모하였는데 (나중에)부하들을 데리고 순시차 이곳을 다시 들렸더니 호호는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있더라"(曾쉬此郡. 太守孫億眷官妓好好. 按部重過. 好好已老矣)고 되어 있다.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시조공께서는 승평의 판관을 역임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고려시대 판관이란 대도호부사를 행정적으로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자이다. 따라서 손억이라는 도호부사를 보좌한 후 나중에 손억이 입신양명한 후 다시 시조공과 더불어 연자루에서 예전에 손억 공이 사랑하였던 여인인 호호(好好)를 연자루에 불러내어 만나보았을 때 이미 예전의 곱던 그 여인이 벌써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종인들이시어, 시간이 있으면 아니 시간을 일부러라도 내서 전남 순천시에 있는 죽도봉공원에 한 번 가보시라. 거기에는 고려 때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연자루가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뒤 강복성이란 분이 부사로 부임하여 중건하였다가 퇴락한 후 1978년 재일동포 김계선의 재정적 지원아래 원래의 위치에서 장소를 바꿔 현 위치에 2층 누각으로 복원되어 있고 거기에는 시조공의 시가 판액으로 만들어져 모셔져 있답니다.
앞서 말씀드린 신증동국여지승람 순천도호부편의 명환(名宦)조에는 "장일은 고려 고종 때 판관이었는데 행정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張鎰,高麗高宗朝爲判官,以政最聞)" 고 되어 있읍니다.
주지하다시피 동국여지승람은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입니다. 당시 관리들이 상부의 지시에 의하여 승주지방을 거쳐간 무수한 관리들 가운데 행정능력(吏治)이 뛰어난 분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을 때 "고려시대에는 장일"이라고 보고하여 편찬된 것일진데 우리 시조공께서 그때까지 관리들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어른의 대단하신 능력에 새삼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우리 시조공께서는 이렇게 훌륭한 분이셨는데 우리 후손들은 과연 어떠한 위치에서 있는지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 보고 발심(發心)하여 시조공을 본받으시라는 의미에서 두서 없이 몇 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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