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邪顯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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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형근 작성일 17-12-19 09:49 조회 1,372회 댓글 0건본문
破邪顯正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뽑았다고 합니다. 본래 불교에서 나온 말이죠. 이 말을 원불교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뜨려 정법(正法)을 구현하는 것, 인간세상의 온갖 부정부패 부조리를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런 뜻을 가진 파사현정을 왜 교수님들이 올 해의 사자성어로 선정을 했을까요? 교수신문은 지난해 12월 7일~16일 전국 대학교수 28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전체의 32.4%가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선택했고 그다음으로는 ‘생생지락(生生之樂)’(27.0%)을 꼽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내야 국민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아닐 런지요?
긍정(肯定)은 긍정을 낳고 부정(否定)은 부정을 낳는다고 합니다. 긍정은 성공을 가져오고 부정은 실패를 가져 오기 마련입니다. 한 생각 차이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죠. 긍정은 가능성의 파장(波長) 불러오고 부정은 실패의 파장을 전파시킨다고 했습니다. 올 해 2017년은 총선(總選)과 대선(大選)이 치러지는 해입니다. 그러니까 금년 이 두 번의 선거에서 사악(邪惡)한 무리를 몰아내고 옳고 바른 것을 바로 세웠으면 하는 긍정의 염원이 담긴 것입니다.
파사현정에는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강한 실천의 의지가 있습니다. 올해 치러지는 총선에서는 돈 봉투나 돌리고 악덕기업의 뒷배나 봐주며 디도스 공격이나 일삼는 그런 사악한 무리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옳고 바른 사람을 뽑아 나라를 바로 세워가자는 국민의 간절한 희망이 총선과 대선에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입니다.
파사현정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뜻이죠. 그렇다고 불교에서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유학(儒學)에서도 ‘척사위정(斥邪衛正’이나 ‘벽사위정(闢邪衛正)’을 말하고 있습니다. 척사위정은 역시 사악(邪惡)한 것을 배척(排斥)하고 정의(正義)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벽사위정은 조선 후기에 정통 유학자들이 주축을 이룬 천주교 배척 사상으로 잘못 전개된 측면이 있습니다.
1866~1896년의 척사위정운동은 성리학(性理學)의 방어를 위해 지적인 비판에 이어 근대적 ․ 세속적 가치를 성리학의 적(敵)으로 설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회에 근대적 ․ 세속적 가치가 하나의 지배적인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양반 지배층은 이 가치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성리학적 체계를 무너뜨릴 위협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한 것이죠.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닙니까? 얼마 전에 방영이 끝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보아왔듯이 성리학자들인 ‘밀본(密本)’의 끈질긴 개혁저항운동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만큼 개혁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 사자성어 선정에 참여한 배상식 대구교대 교수는 “정의로움이 없는 정치는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없음을 정치꾼들이 알아야 한다.”며 “총선과 대선을 통해 정치꾼은 없애고 진정한 정치가만 남기를 기대한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파사현정에 이어 ‘생생지락’이 2위에 올랐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즐거움이라는 뜻이죠. 생생지락은 세종이 추구했던 좋은 나라의 조건이었습니다. 생생지락은《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중국 고대왕조인 상(商)나라의 군주 반경이 ‘너희 만인들로 하여금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꾸짖음을 들을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파사현정이란 말은 내 것은 옳고 남의 것은 틀리고 사악하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 전제하에서 내 것은 지키고 남의 것은 다 쓸어버려야할 존재라고 하는 생각하는 것이 문제죠. 파사현정은 그런 생각이 먼저 파사현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내 것만 옳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 생각이 팽배한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불행만 가져올 뿐입니다.
상생(相生)은 구호와 말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세상이 불법(佛法)과 불자(佛子)만이 살아남은 불국토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이웃들과 이 땅의 여러 종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조화는 다름과 견제(牽制)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불교에서도 ‘육사외도(六師外道)’가 있었기 때문에 불교라는 찬연한 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즉, 62견(見), 360종의 이설(異說)을 주장한 자유분방한 견해들을 불교는 수용한 것입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여섯 사람이 육사이고요.
다름과 차이! 그것들의 조화야 말로 이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같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곧 죽음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지금 북한의 상태가 그런 것이 아닌지요? 다름 속에 들어있는 같음을 보는 지혜가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무아(無我)! 그 때는 파사현정할 나도 대상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 또한 다름이 아닌 같음이요, 부분이 아닌 전체요, 둘이 아닌 하나였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상생은 상대의 부정이 아닌 긍정을 통해 이를 수 있는 세계입니다. 지금 무아는 없고 내 것만 외치고들 있으니 큰일입니다. 만약 파사밖에 따로 현정이 있다고 하면 도리어 그 현정에 집착되어 다시 사견에 떨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파사는 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 번 양대 선거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파사현정은 없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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