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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장씨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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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진학 작성일 11-04-25 00:00 조회 1,8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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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의 유래>>




우리나라의 장씨는 각종 문헌 및 자료에 의하면 약 4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30본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외래 귀화씨족(歸化氏族)인 덕수장씨(德水張氏)와 절강장씨(浙江張氏)를 제외한 나머지 관향(貫鄕)은 모두 안동장씨(安東張氏)를 대종(大宗)으로 하는 동원분파(同源分派)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그 중에서는 가장 먼저 분파된 인동장씨(仁同張氏)가 가장 많으며,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는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본성은 장씨(長氏)였는데 활을 잘 쏘았으므로 궁(弓)자를 더하여 장(張)으로 성을 삼았다는 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문과급제자 141명을 배출했다.

2000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의하면 장(張)씨는 919천명으로 전체인구의 2.0%이며, 성별순위는 286성 중 제9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동장씨세보]와 [조선씨족통보] 등에 의하면 태사공 정필은 중국 절강성 출신으로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할 때 고창군에서 김선평, 권행 등과 더불어 창의하여 전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의 작위를 받고 고창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제의 모든 장씨는 장정필, 장순룡, 장해빈 3계통에 연원을 두고 덕수와 절강장씨를 제외한 모든 장씨가 장정필의 후예라는 일반적인 통념에서도 정확한 계대를 알지못해 합보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안동장씨】 시조 장정필(張貞弼)은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안동(安東:당시 古昌郡)에서 김선평(金宣平:新安東金氏의 시조)·권행(權幸:安東權氏의 시조)과 함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으로서 《안동장씨세보》에는 그의 선대(先代)가 중국인이며 신라 말기에 한국으로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는 무신인 사길(思吉)· 철(哲) 부자가 있었다. 사길은 의주(義州)의 토호로서 1390년(고려 공양왕 2) 밀직부사 (密直副使)로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에 공을 세워 회군공신(回軍功臣)이 되었고, 조선 개국에도 공을 세워 개국공신 1등으로 중 추원지사에 올랐다. 철은 고려 말기 무과에 급제하여 1388년(우왕 14) 아버지와 함께 위화도회군에 공을 세웠고 첨절제사(僉節制使)·영흥부사(永興府使) 등을 지냈다. 학자로는 흥효(興孝)· 세량(世良) 등을 들 수 있으며, 홍경래의 난 때 크게 공을 세운 몽열(夢說)·낙현(洛賢) 부자도 있다.



[인동장씨】 대체로 장금용을 시조로 내세우고 있으나 지방에 따라서는 세계(世系)를 달리하고 있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학자 현광(顯光)이 있다. 그는 당대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의학(醫學)에도 일가견을 이루었으며 후에 영의정에 추증 되었다. 무신으로는 만(晩)·붕익(鵬翼)·지항(志恒)·현택(鉉宅) 등이 있으며, 영조 때 득만(得萬)은 인물화가로서 세조의 영정을 그렸고 그의 증손 한종(漢宗)과 현손 준량(駿良)도 모두 화가로서 이름이 높았다. 근세 인물로는 순국지사 태수(泰秀)와 우국언론인 지연(志淵)이 있다.



[덕수장씨】 원래 이슬람계(系) 귀화족으로 전해지고 있다.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등에 의하면 덕수장씨의 시조 장백창(張伯昌:일명 張卿)은 이슬람계 사람으로 원(元)나라 세조 때 필도치(必赤)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행하여 고려에 왔다가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인조 때 명신 유(維)가 있다. 그는 대제학·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이식(李植)과 더불어 조선시대 한문학의 4대가로 일컬어진다. 그의 부친 운익(雲翼)은 중국어에 능통하여 주청사(奏請使)로 명(明)나라를 내왕하였다.



이 밖에 장씨 인물을 본관별(本貫別)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창녕장씨(昌寧張氏)는 고려 충렬왕 때 일(鎰)과 그 후손 아(莪) 등이 있고, 흥덕장씨(興德張氏)는 고려 현종 때 호부상서를 지낸 시조 장연우(張延祐)를 비롯, 그 후손 인신(隣臣)·웅선(應旋)·응량(應梁) 등이 있으며, 울진장씨(蔚珍張氏)의 한보(漢輔)는 성리학에 일가를 이루었다. 결성장씨(結城張氏) 시조는 고려 때 호장(戶長) 장갑(張甲)으로 그의 증손 하(夏)가 고려 말기 한성판윤을 지내고 결성군(結城君)에 봉해짐으로써 결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구례장씨(求禮張氏)는 시조 장악(張岳)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냈고, 조선시대 필무(弼武)는 무인으로서 청백리에 뽑혔다. 태원장씨(太原張氏)는 안견(安堅)·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화단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승업(承業)을 낳았다.목천장씨(木川張氏)의 대표적 인물로는 윤(潤:충의공)을 들 수 있다.

한편 장희빈(張禧嬪)의 가계를 보면 희빈장씨의 종숙(從叔)인 현(炫)은 옥산부원군(玉山府院君) 형(炯)과 사촌간으로서 어전역관(御前譯官)으로 40여 년 동안 재직하면서 30여 차례나 베이징[北京]을 왕래하며 청(淸)나라와의 외교업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에 와서 장씨는 이본이라도 통혼을 하지 않으며, 인동, 결성을 비롯한 대다수의 장씨가 동원임을 주장하고 범장씨의 결속을 다지며 매년 봉행되는 태사충헌공의 시향대제에 함께 참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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