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할아버지 이름에 대하여 답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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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09-19 00:00 조회 1,261회 댓글 0건본문
우리 문중의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주신 장병옥 님께 감사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우리 창녕장씨의 시조는 '鎰(일)' 字 입니다.
1. 이름자 앞에 붙이는 용어를 "生名 死諱"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생존시에는 이름자 앞에 '名(명)'을 붙이고, 사후에는 '諱(휘)'를 붙이는 것이므로, 사후에 이름자가 바뀌는 것이 아니고, 생전에 사용한 이름을 그대로 족보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2. 시조의 이름은 문헌자료에 근거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창녕장씨족보'는 1753년 경에 작성한 자료와 1844년에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족보 등이 있는데, 시조 이름에 모두 '鎰(일)' 字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고려 명신이신 '張鎰' 이란 분이 분명합니다.
3. 질의하신 '천일(千鎰: 본래 '천일' 인데, '천익'으로 잘못 기록되기도 함)에 대해서는 태사 충헌공 후손 가운데 안동장씨 계통에 '萬鎰(만일)'이란 분이 있는데, 그의 동생에 '千鎰(천일)'이 있으므로, 시조 이름 '鎰' 자와 비슷한 '천일'을 근대에 와서 다른 문중에서 창녕장씨 시조로 추정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천일'의 경우는 다른 성씨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창녕장씨 시조로 볼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4. 장병옥 님이 설명하신 내용 가운데 "문과 급제로부터 1274년 지첨의부사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보인 대상 인물은 '장천익'의 행적이 아니고 <고려사>에 수록되어 있는 '張鎰'의 행적이라 하겠습니다.
5. 2002년 3월 경에 인터넷에 나타나고 있다는 '창녕장씨'에 관한 내용은 우리 문중에서 올린 내용이 아닙니다. 따라서 일부에서 사적 고증 없이 무분별하게 올린 '인터넷' 내용에 대해서는 자료로 수용할 가치가 없으므로, 유의하실 것을 당부드리오며, 우리 문중에서 올린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관리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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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할아버지의 이름이 족보에는 '일'이라는 것으로 명명 되는 데 저가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 보니까 조금은 흔란스러워 글을 올려봅니다
시조 할아버지의 성함을 함부로 거론 하는 것을 나무라지 마셔요.
현대에 와서는 중고등 교과서에 즉 국가에서 공인되는 교과서에서도 이름을 거명함을 생각하면
그렇게 결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3월 쯤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자료에 보면
창녕장씨의 시조 장간공 장천익은 태사 충헌공 장정필(안동장씨의 시조)의 후손으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1228년(고려 고종15년) 승평판관이 되었어며 직사관을 거쳐 1262년(원종 3년) 전중어사 되어 몽고에 다녀 온후 국자제주가 되었어며,1265년 중서사인으로 다시 몽고 다며온후 1263년 예부시랑응로 정조사가 되어 몽고에 다녀 왔다. 1270년 삼별초의 난이 일러나자 대장군으로 경상도 수로방어사가 되어 진도에서 이를 진압하고 동지중추원사가 되어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지첨의부사보문서 대학사수국사에 이르고 하산(창녕)군에 봉해지자 본관을 창녕으로 하였다. 라고고 하였는데
요점은 시조 할아버지 이름을 "일" 즉 돌아가실 때 붙이는 "휘"를 사용함으로써 실제 함자를 모른다는게 문제인 것 같은 데 관련자 께서 확인 바람니다 . "장" 자 "천" 자 "익"자 함자가 "일" 할아버지의 함자인지 틀리지 않다면 후손들이 어디지 자료를 보면서 흔란되지 않도록 홍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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