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할아버지의 이름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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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병옥 작성일 05-09-19 00:00 조회 796,952회 댓글 0건본문
시조 할아버지의 이름이 족보에는 '일'이라는 것으로 명명 되는 데 저가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 보니까 조금은 흔란스러워 글을 올려봅니다
시조 할아버지의 성함을 함부로 거론 하는 것을 나무라지 마셔요.
현대에 와서는 중고등 교과서에 즉 국가에서 공인되는 교과서에서도 이름을 거명함을 생각하면
그렇게 결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3월 쯤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자료에 보면
창녕장씨의 시조 장간공 장천익은 태사 충헌공 장정필(안동장씨의 시조)의 후손으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1228년(고려 고종15년) 승평판관이 되었어며 직사관을 거쳐 1262년(원종 3년) 전중어사 되어 몽고에 다녀 온후 국자제주가 되었어며,1265년 중서사인으로 다시 몽고 다며온후 1263년 예부시랑응로 정조사가 되어 몽고에 다녀 왔다. 1270년 삼별초의 난이 일러나자 대장군으로 경상도 수로방어사가 되어 진도에서 이를 진압하고 동지중추원사가 되어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지첨의부사보문서 대학사수국사에 이르고 하산(창녕)군에 봉해지자 본관을 창녕으로 하였다. 라고고 하였는데
요점은 시조 할아버지 이름을 "일" 즉 돌아가실 때 붙이는 "휘"를 사용함으로써 실제 함자를 모른다는게 문제인 것 같은 데 관련자 께서 확인 바람니다 . "장" 자 "천" 자 "익"자 함자가 "일" 할아버지의 함자인지 틀리지 않다면 후손들이 어디지 자료를 보면서 흔란되지 않도록 홍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찾다 보니까 조금은 흔란스러워 글을 올려봅니다
시조 할아버지의 성함을 함부로 거론 하는 것을 나무라지 마셔요.
현대에 와서는 중고등 교과서에 즉 국가에서 공인되는 교과서에서도 이름을 거명함을 생각하면
그렇게 결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3월 쯤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자료에 보면
창녕장씨의 시조 장간공 장천익은 태사 충헌공 장정필(안동장씨의 시조)의 후손으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1228년(고려 고종15년) 승평판관이 되었어며 직사관을 거쳐 1262년(원종 3년) 전중어사 되어 몽고에 다녀 온후 국자제주가 되었어며,1265년 중서사인으로 다시 몽고 다며온후 1263년 예부시랑응로 정조사가 되어 몽고에 다녀 왔다. 1270년 삼별초의 난이 일러나자 대장군으로 경상도 수로방어사가 되어 진도에서 이를 진압하고 동지중추원사가 되어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지첨의부사보문서 대학사수국사에 이르고 하산(창녕)군에 봉해지자 본관을 창녕으로 하였다. 라고고 하였는데
요점은 시조 할아버지 이름을 "일" 즉 돌아가실 때 붙이는 "휘"를 사용함으로써 실제 함자를 모른다는게 문제인 것 같은 데 관련자 께서 확인 바람니다 . "장" 자 "천" 자 "익"자 함자가 "일" 할아버지의 함자인지 틀리지 않다면 후손들이 어디지 자료를 보면서 흔란되지 않도록 홍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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