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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운영 싸이트의 창녕장씨 선대 타성관 오기 기록 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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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진근 작성일 08-07-09 00:00 조회 1,39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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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정신문화연구원으로 잘 알려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는 조선시대에 문과에 합격한 분들을 성관별로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우리 창녕의 선대인 휘 아(莪)가 단양인으로 기록된 것을 발견하고 그 분이 단양인이 아니라 창녕장씨임을 여러 자료를 들어 시정을 요구하여 이를 관철시킨 사실이 있어 여러 족인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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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98 [성씨와 본관] 세종조 문과급제자 장아의 성관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이름 : 장진근 등록일 : 2008-05-15 조회수 : 62 첨부파일 : 첨부파일 없음
링크 : 링크없음
귀 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세종 8년 문과급제자 장아(張莪)의 관향을 단양(丹陽)이라고 하고, 한편 그의 아들들인 장계증(張繼曾)과 장계지(張繼池일명 繼弛)에 대해서는 관향이 각각 창녕이라고 하여 한 자료에서 부자간에 관향을 서로 달리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전해 지고 있는 방목은 종합방목으로 《국조방목》이라는 것이 있는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것으로 저작권이 없어 아무개에게 개방되고 있는 7권으로 된 《국조방목》 제1책98쪽에 기록된 장아는 관향이 빈난으로 되고 전직이 군수로 되어 있으나 기타 부, 조 관계가 각 미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책 124쪽에 기록된 장계증(張季曾)에 대해서는 역시 관향 미상으로 되어 있으나 벼슬이름으로는 병조정랑으로 주기되어 있고 어떤 책에서는 부가 아(莪)라고도 하고 의(義)의 아들이라고 한다고 주기되어 있습니다. 같은책 137쪽에는 장계이(張繼弛)가 기록되어 있는데(張繼施로 오기되었음) 위와 마찬가지로 관향이 미상으로 되어 있고 이학에 정박하고 조행이 있다고 부기 되어 있으며 사성(司成)이라고 주기되어 있는 바, 그의 관력인 성균사성과 일치되고 있습니다.



한편 같은 도서관에서 소장된 것으로 역시 저작권이 없어 아무개에나 개방되고 있는 13권으로 된 또 다른 《국조방목》 제1책 77쪽에는 장아의 관력을 한림 괴산군수로 되어 있고 관향을 단양이라고 하였으며 부는 환, 조는 덕량으로 주기가 되어 있고, 같은책 111쪽에는 장계증과 관련하여 관력을 병좌(병조좌랑)라 하고, 관향을 단양인, 부는 아, 세종 병오년 문과에 합격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같은 책 129쪽에는 장계이와 관련하여 무오사마라고 하여 무오년에 진사시험에 합격한 사실이 주기되었고, 관력으로 헌납, 이학에 정박하고 조행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관향은 단양인으로 되어 있고, 부는 세종병오문과합격자요 형 계증은 세종 임술년문과합격자라고 기록하여 마치 장아와 장계증 장계이 부자가 모두 단양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국조문과방목》이란 또 다른 방목(태학사에 의해 영인되고 현재 귀 연구원 소장)에 의하면 동서 145쪽에 장아와 관련하여 관향이 창녕으로 되어 있고 단양인이라고도 하고 계증의 부라고 주기되어 있고, 동서 173쪽에 장계증과 관련하여 부가 장아라 하고 관력은 병정(병조정랑)이라고 되어 있으며 관향은 역시 창녕으로 되어 있으며, 동서 188쪽에는 장계지(장계지, 지는 어떤 책에서는 이라고 한다고 주기되었음)와 관련하여 부가 아요, 관력은 사간이요, 이학에 정박하고 조행이 있다고 하였고 역시 관향은 창녕인으로 되어 있음을 각각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동시대를 살았던 동일한 인물에 대하여 어떤 자료에서는 관향 미상으로 어떤 책에서는 창녕 또는 단양으로 각각 달리 기록되어 보는 이 같은 기록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 것이 맞는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생각컨대 이분들에 대해 성관이 어떠하며 부, 조, 처부, 거주지 등 관계를 극명하게 밝혀 줄 수 있는 단과방목이 아직까지 현재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각종 방목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객관적인 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읍니다.

즉 17세기에 보학자로서 유명한 《씨족원류》를 쓴 조종운의 기록에 의해 장아, 장계증, 장계이 등을 창녕이라고 한 사실에 있습니다.(543쪽 참조)

제가 객관적이라고 힘 주어 말한 것은 위 사람들이 단양이라고 기록한 《국조방목》의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케 하는 여러 정황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추단하는 것입니다. 위 국조방목의 기록은 전자들과는 달리 조선조 말기까지의 문과급제자 등을 기록하고 있는데 제가 방목을 복사하면서 보니까 문제의 방목을 베꼈던 용지의 판심(版心)에 '시위대1대대'라고 부동문자로 인쇄된 용지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시위대는 신식군대의 편제에 의한 군부대를 말하는 것이고 거기에 근무했던 분이 베꼈던 문서로 보입니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주관하는 부서는 예조입니다. 혹시 예조에서 만들거나 베껴둔 방목이라면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방목에서는 거개가 장아의 부나 조부가 미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위대1대대 용지를 사용하여 방목을 베꼈던 갑자기 장아와 그의 두 아들이 모두 단양장씨라고 함과 동시에 장아의 부는 환(歡)이요, 조는 덕량(德良)이라고 부기가 되어 있는데 이도 석연치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발견된 영조 이전에 작성된 방목에는 미상으로 된 장아의 부, 조 관계가 한말에 갑자기 단양인으로 바뀜과 동시에 부조관계가 새로이 밝혀졌다는 사실입니다.



장아는 창녕장씨이지 단양장씨가 결코 아닙니다.

우선 조선 성종 때부터 중종 때까지 생존했던 문화유씨로서 영의정을 역임하였던 유순(柳洵)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아내가 창녕장씨인 장계증의 딸입니다. 귀 연구원에 소위 《문화유씨가정보》름 검색해 본 바, 유순의 처가 장계증의 딸이라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었습니다.

17세기 이전의 우리나라 족보에는 관력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 주인공의 생몰년대라든가 처의 가계 등이 17세기 후반의 족보와는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보학에 관해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공지의 사실입니다. 따라서 유순의 처로 '창녕장씨 장계증의 딸'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허나 위 《가정보》 앞 부분에 실려 있는 유순의 묘갈문에 의하면 부인이 통례문사 장계증의 딸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서 33쪽 b면)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씨족원류》의 문화유씨 항목에서 유순에 관한 기록 중에 '아내는 지통례문 창녕 장계증의 딸이다(室知通禮門昌寧張繼曾女)'는 기록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왜 《가정보》에는 부인에 관한 기록이 없는데 《씨족원류》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는 있다고 봅니다. 이는 당대에 보학의 대가였던 조종운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도 상식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지득했던 사실을 그대로 적었을 수도 있겠고 《가정보》와는 다른 유순 직계의 파보 따위를 입수하여 그에 근거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회에서 영인발간한 또 다른 《국조방목》 42쪽 상단에도 유순과 관련하여 장계증의 처부(妻父, 장인)로 부기되었다는 사실도 첨언합니다.



위 사실을 입증할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에서 저들의 식민통치를 위해 고대로부터 그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사람들에 관한 《조선인명사서》를 만들었는데 그 부록에는 일본인 학자들이 조선조방목을 연구하고 그 결과물로서 만든 〈국조방목첩람색인〉과 《문과방목》이란 게 실려 있더군요. 대한민국국회에서 영인한 《국조방목》에서도 그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은근슬쩍 그대로 전재를 하였고, 태학사에서 영인한 것도 역시 그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전재했는데 거기에도 장아, 장계증, 장계이 3명 모두 본관을 창녕인이라고 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귀 연구원에서 이들의 관향을 제대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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