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은공(晩隱公, 諱 順受) 외가 및 처가 계통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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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4-08-04 16:44 조회 2,174회 댓글 0건본문
만은공(晩隱公, 諱 順受) 외가 및 처가 계통도 정리
辛斯蕆 ┬ 息 - 子寧 - 晉保 ┬ 柱 - 世卿 - 希壽 - 압(石甲) - 女 李重光 - 女 韓時晦
(典工判書) │(節度使) (郡守) (節度使) │(世宗 武科)
│ ├ 樑 ┬ 世挺 - 椀 - 礎(武郡守) - 聖㐕
│ │ │
│ │ └ 女 李敞 - 元佑 - 女 張順受(文府使) - 承吉 - 女 辛聖㐕
│ │ (主簿 星州人) (墓 靈山)
│ └ 女 裵孟厚 - 世純 - 女 金遇明 - 女 張彭年 - 益奎(于房)
│
└ 女 姜弼 - 自渭 - 遇武 - 女 曺世唐 - 克復 - 女 張華 - 順受
(司正) (司正)
1. 辛萬亨 編, 『靈山寧越辛氏合譜』(목활자본, 1716년) 및 李光迪 編, 『星州李氏族譜』(목판본, 1694년) 참조
2. 辛斯蕆(?-1382)은 靈山人으로, 위 辛氏의 合譜에서 靈山居派라 표기되어 있다.
3. 韓時晦는 于房公 휘 益奎(1571-?)의 姪壻로, 釣隱 韓夢參(1589-1662)의 아들이다.
4. 辛聖㐕(1600-1644)은 휘 順受의 孫壻이다. 聞巖 辛礎(辛希壽의 出系子, 辛椀의 系子 )의 3男인데, 武科에 급제하여 大丘中軍이 되었으며, 辛石甲의 系子가 되었다.
5. 李敞은 主簿를 지냈는데, 星山君 文烈公 李兆年(1269-1343)의 6세손이고, 領議政 文景公 亨齋 李稷(1362-1431)의 曾孫이다. 또 靈山人 辛樑(?-1450)의 女壻이고, 辛斯蕆의 5世孫壻이다.
6. 선조 諱 順受(1529-?) : 昌寧人, 昌寧 居住, 1556년에 문과 급제, 系子는 承吉이다.
李光迪 編, 『星州李氏族譜』(목판본, 1694년)의 系譜圖에 “女張順受 文府使”(女壻 張順受는 文科에 급제하고 府使가 되었다)라고 표기되어 있으므로, 선조 휘 順受가 성주이씨 家門에 장가든 것이 明白하다.(『國朝榜目』에서 文科 급제한 張順受는 1인 뿐이다.)
그런데, 李元佑(配는 1504년에 進士에 入格한 靈山 居住 密陽人 朴承伯의 女)의 막내아들(5男) 李信老(두 아들 李秠, 李稌 모두 無后)의 女壻로 표기된 것은 生年으로 따져볼 때 잘못이라 하겠고, 윗 대인 李元佑의 女壻라 하겠다.
한편, 이 족보를 꼼꼼히 검토해보면 李信老의 仲兄 李義老(宣傳官)가 萬曆乙酉(1585년)生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오류가 나타난다. 즉 李義老의 아들 李稶(文科, 江原監司)이 1562年生이고, 사위 金尙憲도 1570年生임을 考證할 수 있다. 이와 같이 生年의 오류를 보이고 있어서 世系의 오류가 예상되는 것이다. 壬亂 以前 인물로서 生年의 誤記나 上下 位次가 바뀐 事例는 여러 족보에서 散見된다.
7. 于房公 휘 益奎(1571-?)는 典翰公 휘 仲誠의 후손으로, 寒岡 鄭逑의 門人이다.
8. 曺世唐 : 昌寧人, 昌寧 居住, 1480년 進士, 1492년 문과 급제하였다. 辛氏의 合譜에서는 郡守로 표기되어 있다. 휘 順受의 外曾祖가 되지만, 妻家 기준으로 11寸의 戚分이 있다(同行 14寸). 또 公의 聘父인 姜遇武의 집안도 당시 靈山에 거주한 듯하다.
※ 2012년, 外後孫 張仁鎭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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