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백과 장씨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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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3-05 12:17 조회 2,316회 댓글 0건본문
각종 문헌에 약 4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30본 내외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외래 귀화씨족(歸化氏族)인 덕수장씨(德水張氏)와 절강장씨(浙江張氏)를 제외한 나머지 관향(貫鄕)은 모두 고려에서 삼중대광보사벽상공신 태사(三重大匡保社壁上功臣太師)에 오른 충헌공(忠獻公) 장정필(張貞弼)로부터 동원분파(同源分派)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중 인동장씨(仁同張氏)가 가장 많은데,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는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본래 장씨(長氏)였는데 활을 잘 쏘았으므로 궁(弓)자를 더하여 장(張)으로 성을 삼았다는 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문과급제자 141명을 배출했다.
장씨 인물을 본관별(本貫別)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창녕장씨(昌寧張氏)는 고려 충렬왕 때 하성군(夏城君, 하성은 창녕의 옛 이름)에 봉해진 일(鎰)을 시조로 하며, 조선조에 강원도사(江原都事)·평양서윤(平壤庶尹)을 지낸 아(莪), 도승지(都承旨)를 지낸 우성(友誠) 등을 배출하였다.
흥덕장씨(興德張氏)의 시조는 고려 초기에 광평시랑(廣評侍郞)을 지낸 유(張儒)이며, 고려 현종 때 호부상서를 지낸 연우(延祐)를 비롯하여 인신(隣臣)·웅선(應旋)·응량(應梁) 등을 배출하였다.
울진장씨(蔚珍張氏)는 고려 정종 때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에 봉해진 말익(末翼)을 시조로 하며, 고려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양수(良守), 경학(經學)에 일가를 이룬 한보(漢輔) 등을 배출하였다.
구례장씨(求禮張氏)는 시조 장악(張岳)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냈고, 조선시대 필무(弼武)는 무인으로서 청백리에 뽑혔다.
태원장씨(太原張氏)는 안견(安堅)·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화단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승업(承業)을 배출하였다.
목천장씨(木川張氏)의 대표적 인물로는 충의공(忠毅公) 윤(潤)을 들 수 있다. 한편 장희빈(張禧嬪)의 가계를 보면 희빈장씨의 종숙(從叔)인 현(炫)은 옥산부원군(玉山府院君) 형(炯)과 사촌간으로서 어전역관(御前譯官)으로 40여 년 동안 재직하면서 30여 차례나 베이징[北京]을 왕래하며 청(淸)나라와의 외교업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75년 국세조사에서는 13만 6347가구로 성별 순위는 249성 중 제9위였고, 1985년 조사에서는 19만 2841가구에 인구 81만 231명으로 성별 순위는 274성 중 제9위였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는 28만 7195가구에 인구 91만 9339명로 전국 인구 구성비 2.0%를 차지하였으며, 성별 순위는 286성 중 역시 제9위로 나타났다.
장씨 인물을 본관별(本貫別)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창녕장씨(昌寧張氏)는 고려 충렬왕 때 하성군(夏城君, 하성은 창녕의 옛 이름)에 봉해진 일(鎰)을 시조로 하며, 조선조에 강원도사(江原都事)·평양서윤(平壤庶尹)을 지낸 아(莪), 도승지(都承旨)를 지낸 우성(友誠) 등을 배출하였다.
흥덕장씨(興德張氏)의 시조는 고려 초기에 광평시랑(廣評侍郞)을 지낸 유(張儒)이며, 고려 현종 때 호부상서를 지낸 연우(延祐)를 비롯하여 인신(隣臣)·웅선(應旋)·응량(應梁) 등을 배출하였다.
울진장씨(蔚珍張氏)는 고려 정종 때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에 봉해진 말익(末翼)을 시조로 하며, 고려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양수(良守), 경학(經學)에 일가를 이룬 한보(漢輔) 등을 배출하였다.
구례장씨(求禮張氏)는 시조 장악(張岳)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냈고, 조선시대 필무(弼武)는 무인으로서 청백리에 뽑혔다.
태원장씨(太原張氏)는 안견(安堅)·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화단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승업(承業)을 배출하였다.
목천장씨(木川張氏)의 대표적 인물로는 충의공(忠毅公) 윤(潤)을 들 수 있다. 한편 장희빈(張禧嬪)의 가계를 보면 희빈장씨의 종숙(從叔)인 현(炫)은 옥산부원군(玉山府院君) 형(炯)과 사촌간으로서 어전역관(御前譯官)으로 40여 년 동안 재직하면서 30여 차례나 베이징[北京]을 왕래하며 청(淸)나라와의 외교업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75년 국세조사에서는 13만 6347가구로 성별 순위는 249성 중 제9위였고, 1985년 조사에서는 19만 2841가구에 인구 81만 231명으로 성별 순위는 274성 중 제9위였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는 28만 7195가구에 인구 91만 9339명로 전국 인구 구성비 2.0%를 차지하였으며, 성별 순위는 286성 중 역시 제9위로 나타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張]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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