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지성인의 필독서 토마스만의 에세이 <예술과 정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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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재 공식블로그

2020. 11.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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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독일의 대문호, 노벨상 수상자인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지성인의 필독서

<예술과 정치>가 어제(2020.11.13) 출판되어

2020.11.17 (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중에서 판매될 예정입니다.

토마스 만의 "예술과 정치"는 과연 어떤 책인지 신간보도자료를 통해 먼저 간략하게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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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보도자료

예술과 정치(반지성주의를 경계하며)

지은이: 토마스 만

옮긴이: 홍성광

원서: Thomas Mann Essays

출판사: 도서출판 청송재

분야: 정치 사회>정치 에세이>비평집

발행일: 20201120

ISBN: 979-11-970125-2-5 (03300)

정가: 23,000

페이지: 416P

크기: 146-225(신국판 변형)

키워드: 토마스 만/반지성주의/민주주의/ 사회주의/문화 예술/아이러니/휴머니즘/ 독일/나치즘/히틀러/제1차 세계대전

연락처: 010-7159-5112

이메일: sol@csjpub.com

"국내 첫 번역 소개되는 토마스 만 정치 에세이" - 국내 최고 토마스 만 전문가 홍성광 번역

상징과 유머, 패러디로 넘쳐나는 비정치적 인간의 통렬한 성찰

독일 현대문학의 상징이 된 대문호, ‘바이마르 공화국의 양심’ 토마스 만의 지적 투쟁의 기록!

20세기 문명과 야만의 시대를 가르며 토마스 만은 반세기 역사의 산증인이자 시대의 목격자로서 그 임무를 다하였다.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의 정치적 발언들은 토마스 만 시대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토마스 만은 나치즘이라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반지성주의를 목도하며 그가 집필한 수많은 평론과 문 학에서 나치 체제의 위험성을 공격한다. 그는 전쟁 동안 영국 BBC 라디오 방송에서 제안한 히틀러 타도를 외치는 반나치 라디오 연설시리즈 「독일 청취자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46개월 동안 매월 1회 방 송을 하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 정권의 비민주성과 비인간성을 호소하였다(이것은 1940~1945년 미국에 서 녹음되고 영국으로 보내져 BBC 라디오 방송에서 토마스 만의 육성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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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ANN ESSAYS

비합리적인 반지성주의를 경계하며 인류애의 고귀함 일깨우다.

토마스 만은 괴테와 함께 독일 문학의 양대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1929년 노벨 문학상을 비롯, 1949년 괴 테상, 1955F. 실러상 등을 수상한 그는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평론가로서도 탁월하여 문학•예술•철학•정치 등 많은 영역에 걸쳐 우수한 평론과 수필을 많이 남겼다. 이 책은 『토마스 만 전집』 중에서 토마스 만의 정치적 에세이들을 모은 정치비평집 『Thomas Mann Essays』이다. 문화와 예술, 예술가와 사회, 민주 주의와 파시즘, 문화와 사회주의와 같은 사상적으로 깊이 있는 사회 비평 주제를 다루고 있다. 모두 주옥과 같은 에세이지만 「형제 히틀러」, 「다가올 민주주의의 승리」, 「문화와 정치」, 「독일과 독일인」, 「내가 독일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 「예술가와 사회」는 특히 흥미를 끄는 주목할 만한 글이다.

이 책에서 토마스 만은 독일 제국의 붕괴, 바이마르 공화국의 탄생, 나치 정권의 등장으로 인한 암울한 전 쟁 시기를 거치며 삶이 계속됨에 따라 그의 정치적 입장 또한 많은 변화를 거친다. 1914년 독일 빌헬름 제 국 시대의 제1차 세계대전 동안은 독일 문화를 옹호하는 보수주의를 지지하고 유럽식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을 썼다. 1918년 독일 11월 혁명을 시작으로 황제가 퇴위하고 독일 제국이 붕괴되었 다.

그는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자 점차 사회 도덕적 윤리의식과 정치적 양심에 눈뜨며 바 이마르 공화국 준공식 대변인이 되어 의회민주주의 수호자로 활약했다. 이때 그는 「독일 공화국에 관하여」 등 정치적 주제를 견지한 글을 썼으며 유럽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민주주의 정부를 옹호하는 강연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후 나치즘(국가사회주의)의 대두로 1930년 베를린에서 나치중심 사회주의를 비난하고 「이성 에의 호소」 등 정치적 강연 및 많은 평론을 통하여 독일 시민계급에게 그 위기를 호소하였다. 19331월 나치 독일의 등장으로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비인간적 광신주의를 강력히 비난하였으며 스위스로 망명 하기에 이른다.

그는 논쟁적 보수주의의 정신으로 취급되는 정치적 문제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인간성, 관 용 및 이성의 취약성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밝히고 전달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사는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의 영원한 이행입니다. 사물들의 끝없는 순환 속에서 모든 것이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다 익은 열매는 가지에서 떨어집니다.”

독일 휴머니즘의 부활을 추구해 온 토마스 만은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재앙에 대해 시민시대의 대표자로서, 작가로서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일깨우며 인류애의 고귀함을 역설하였다. 토마스 만은 시대의 가장 위대 한 시민적 작가였으며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 동시대 유럽 사회의 가장 위대한 교사가 되었다. 그는 아이러 니와 유머, 상징과 패러디가 넘쳐나는 그의 글에는 비합리적 반지성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호소했으며, 문명 과 야만, 문화와 예술, 삶과 정신, 예술과 정치, 시민 사회와 예술가, 보수와 진보, 윤리 의식과 휴머니즘 등 자신이 살고 있는 정치 사회 문화의 시대적 질문에 대해 회의하고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내가 오늘날 어디에, 어느 편에 서 있을 것인가?”

토마스 만은 문학예술가, 사회비평가, 정치적 양심에 눈뜬 세계시민주의자로 그의 시대를 고백하고 기록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성찰할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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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옮긴이의 글

20세기 토마스 만의 시대

1 전쟁 중의 생각

2 세계 평화?

3 아이러니와 급진주의

4 문화와 사회주의

5 빈의 노동자들 앞에서 행한 연설

6 형제 히틀러

7 본 대학 철학부와의 서신 교환

8 다가올 민주주의의 승리

9 문화와 정치

10 독일 청취자 여러분!

11 독일과 독일인

12 내가 독일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

13 예술가와 사회

해설: 토마스 만의 생애와 사상 | 홍성광

토마스 만 연보


책 속으로

그러면 예술은 어떤가? 예술은 문명과 관계되는가 아니면 문화와 관계되는가?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답변 할 수 있다. 예술은 진보와 계몽주의, 안락함을 보장하는 사회 계약, 요컨대 인류의 문명화에 내적으로 관심 이 없다. 예술의 휴머니즘은 전적으로 비정치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예술의 성장은 국가 형태나 사회 형 태와 무관하다. 광신주의와 미신은 문화의 번성을 도와주지도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확실히 예술은 이 성과 정신보다 열정이나 자연과 훨씬 친밀한 관계에 있다. 예술이 혁명적인 몸짓을 보인다면 진보의 의미에 서가 아니라 원초적인 방식으로 그러는 것이다. 예술은 보존하고 형태를 부여하는 힘이지 해체하는 힘이 아니다. -28페이지, 문명대 문화, 「전쟁 중의 생각」

세계 평화…. 민족끼리 증오하는 바람에 하루도 세계가 평화로운 날이 없었다. 나는 유럽의 여러 민족 간의 증오와 적대감이 결국 기만이자 오류임을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 서로를 잔혹하게 물어뜯는 정당들은 요컨 대 정당의 차원을 넘어, 신의 의지에 따라 공동으로 형제의 고통을 나누면서 세계와 영혼의 혁신에 매진하 고 있음을 나는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 분노가 가라앉고 화해가 된 유럽에 대해 꿈꾸는 것은 가능하 다. -62페이지, 유럽식 민주주의 대 민족주의, 「세계 평화?」

예술은 삶에 등을 돌리기 위해 자신에게도 등을 돌리면서 자신의 본질을 배반한다. 재능, 예언자적 재능은 예술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고 순결함을 설교한다. 이러한 식으로 삶이 고갈된다고 사람들은 그에게 항변한 다. 예언자는 “있는 그대로 둬라!”고 대답하는 반면 예술가 정신은 이렇게 말한다. “삶이 대체 하나의 근거 인가?” 우리는 이러한 물음에 물론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그러한 가르침과 물음을 예술적인 소설의 형태 로, 즉 흥겹게 인간들에게 제시한다는 것이 얼마나 색다르며, 얼마나 어린애다운 모순인가! -76페이지,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아이러니와 급진주의」

나는 앞에서 정치와 예술이 처한 상황의 유사함을 밝혔다. 나는 정치와 예술이 삶과 정신 사이의 중간적, 중개적 입장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어쨌든 예술에 대한 나의 입장으로 인정되는 아이러니로 기울어 지는 경향을 여기서 이끌어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한 정치’란 무엇인가? 이러한 단어의 연결을 타당한 것 으로 간주하기에는 이것은 너무나 생소하고 너무나 진지하지 않게 들린다. 무릇 정치란 늘 아이로니컬한 본 질을 지니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정치란 결코 대립이 아니고, 결코 급진적일 수 없으며, 정치가 대립이고 급진적이라면 자신의 본성에 모순됨을 적어도 우리 확신하기로 하자! -85페이지,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아이러니와 급진주의」

“세계사는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의 영원한 이행입니다. 사물들의 끝없는 순환 속에서 모든 것이 스스 로를 파괴합니다. 다 익은 열매는 가지에서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순환이 존재하는 모든 것, 또한 모든 정의와 선의 급격한 몰락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을 위해서 일하는 압도적인 대다수의 사람들 말고 정당하게 옛것을 주장하고 시대의 흐름을 조절하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필연적으로 있을 겁니다. 그렇 지만 그들이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도 없거니와 그럴 의지도 없습니다…. 나의 위임자들이 존엄하고 강함에 도 불구하고, 그들이 쟁취한 개별적 승리들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은 결국 우리보다 더욱 강할 거라고 생각 해 왔습니다. 언론이 무분별하다고 내가 아무리 멸시하더라도 언론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모든 지혜보다 끔찍할 정도로 우월할 거라고 나는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권력과 마찬가지로 예술도 세상의 수레바퀴를 멈 출 수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91페이지,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아이러니와 급진주의」


책 속으로

어떻게 시작하면 가장 좋을까요? 하지만 저는 자신을 부르주아 문화의 아들로 지칭하면서 연설을 시작했 습니다. 시대와 확신이 저를 여러분 앞에 서게 했습니다. 제가 이 시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이 바로 문화와 사회주의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둘의 관계를 상세히 설명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문화 개념을 마르크스적으로 파악하는 정통 신봉자가 결코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경제 적이고 계급적인 것을 삶의 창조적인 기본 사실로 파악하고, 모든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것을 이데올로기적 인 상부 구조로 파악하는 이론에 역사적으로 진실이 담겨 있다고 해도 저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예 술가적·정신적인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영역에서도 문화와 정신의 작품들은 제 견해에 의하면 결 코 계급에 소속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과학의 위대한 발견과 인식인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행위, 혹은 심지어 기술의 획기적인 발명들도 계급적으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인류의 자유로운 행위들입니다.

-130페이지, 「빈의 노동자들 앞에서 행한 연설」

미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려는 저의 입장이 마치 부엉이를 아테네로 데려가는 사람처럼 생각됩니다. 민주주의의 고전적인 나라에 제가 있다는 사실을 마치 모르기라도 하는 듯 말입니다. 이곳에는 사람들 말로 는 신조와 사회 규약이 제법 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확고한 확신으로, 요컨대 당연한 사실로 굳어져 있어 미국 사람이 그에 대해 가르침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대로 유럽 사람은 확실히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유럽 사람은 미국 사람한테서 많이 배워야 합니다. 링컨과 휘 트먼 같은 미국의 정치가와 시인은 민주적 사고와 감정, 민주적 인간성을 세계만방에 글로 알린 장본인들이 었습니다. -191페이지, 사회적 민주주의, 「다가올 민주주의의 승리」

그러한 고백을 하는 것을 내가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나를 돌보아주는 선한 수호신에 감사드린다. 저열하기 짝이 없는 폭력 숭배와 서양의 윤리성의 토대를 위협하는 야만성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독일의 모든 정신과 음악으로 막을 수 없었던 독일 정신에 나의 보수주의가 머물러 있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어디에, 어느 편에 서 있을 것인가? 독일 역사의 불행과 나치라는 문화적 재앙에 빠지게 된 그 도정이 독일의 시민적 정신의 비정치성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정신적인 것과 ‘교양’이라는 높은 고지에서 정치적·사회적 영역을 반민주적으로 내려다본 것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가 하는 점이 나에게 새삼스럽게 의식된 것은 나의 청년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독일의 위대한 일급 사상가이자 문필가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얼마 전에 새로 접했을 때였다. -241페이지, 정신적인 것과 교양, 「문화와 정치」

독일 민족과 오늘날 독일에서 만연하고 있는 폭력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독일이 새롭고, 사회적으로 개선된, 정의와 평화를 토대로 하는, 이러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조성될 국제 질서에 성실하게 편입될 능력 이 있는지에 대해 세계적으로 논쟁이 한창입니다. 누가 이 같은 질문을 하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우리가 나치라고 부르는 것이 독일적인 생활에 오랫동안 뿌리를 박고 있음을 저는 인정합니다. 그것은 끔찍 한 파멸의 씨앗을 늘 품고 있던 이념들이 위험하게 변질된 형태입니다.

-264페이지, BBC 라디오 방송, 「독일 청취자 여러분!」


토마스 만 THOMAS MANN, 1875~1955

독일의 평론가이자 소설가이다.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은 독일 북부도시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사 업가였던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네덜란드 영사, 시의원, 부시장을 지내며 부와 권력을 동시에 누린 인물이 었고 어머니 율리아는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인물이었다. 아버지에게서는 성실하고 엄격한 시민 세계의 도덕적인 기질 을 이어받았고, 어머니에게서는 예술가 기질을 물려받았다. (세계적인 작가 하인리히 만이 바로 그의 형이다.) 토마스 만 은 뮌헨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일찍이 글쓰기를 시작하며 문학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청년 시절 그의 사상 형성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은 쇼펜하우어, 작곡가 바그너, 니체였다. 1898년 그의 첫 번째 작품으로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출간하였으며, 1901년 부유한 상인의 집안이 4대에 걸쳐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발표 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 소설은 1929년 토마스 만이 『마의 산』(매직 마운틴)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05년 뮌헨대학교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 프랑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를 낳았으며, 자녀 세 명(에리카 만, 클라우스 만, 골로 만)은 독일의 중요한 작가로 성장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1918년 유럽식 민주주의에 반대하여 독일 문화를 옹호하는 비평집 『비정치 적 인간의 고찰』을 썼다. 이후 독일 제국이 붕괴되고 독일 공화국(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자 정치적 양심에 눈 을 뜨게 되면서 「독일 공화국에 관하여」 등 정치적 주제를 견지한 글을 썼으며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민주주의 정 부를 옹호하는 강연 활동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그는 1930년 베를린에서 나치중심 사회주의를 비난하고 「이성에의 호 소」 등의 정치적 강연 및 많은 평론을 통하여 독일 시민계급에게 그 위기를 호소하였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함」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후 국외로 강연 여행에 나선 그는 그대로 망명생활을 한다. 나치 정권에 대한 공개적인 반박은 1935년 4월 니스에서 개최 된 ‘지식인연합위원회’에서 「유럽이여, 경계하라!」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1930년대 독일, 파리, 비엔 나, 바르샤바, 암스테르담 등의 유럽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강연을 통해 나치 체제를 통렬히 비판하였다. 그는 1936년 독일 국적과 본 대학 명예박사 학위를 박탈당했다. 1938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초빙교수로 초청되어 미국으로 이 주한 후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요청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게 되 었다. 1952년 매카시 위원회가 그를 공산주의자로 지목한 것을 계기로 스위스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다. 1955년 F. 실 러 사망 150주년 기념 강연에서 세계 평화와 독일의 통일을 염원하였으며, 8월 12일 강연으로 독일 여행 중에 취리히 로 다시 돌아 온 그는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옮긴이 홍성광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 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독일 명작 기행』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토마스 만의 장편 『마의 산』,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중단편 소설집,『베네치아에서의 죽음』, 괴테의『이탈리아 기행』, 『젊은 베르터의 고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의 지혜』,『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카프카의 『변신』, 『소송』, 『성』, 헤세의『헤세의 문장론』,『헤세의 여행』, 『수레바퀴 밑에』,『싯다르타』, 『데미안』,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하이네와 마르크스·엥겔스의『독일. 어느 겨울동화·공산당 선언』, 페터 한트케의『어느 작가의 오후』, 프리드리히 실러의『빌헬름 텔·간계와 사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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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재
청송재 공식블로그 세계여행

청송재지기 장종표는 <백대명산 묵언수행>의 저자로 현재 '은은한 솔향이 샘솟는 좋은 책 만드는 집' 도서출판 청송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