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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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략장군행훈련원판관창녕장공 복식.
칠곡 연화리유적 발굴품은 2014년에 인수되었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출토된 복식류 중 철릭과 명정   회곽묘(灰槨墓)란 조선 초기에 시작되어 19세기까지 널리 사용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의 한 형태이다. 두꺼운 판재로 만든 목곽(木槨) 안에 시신을 안치한 목관(木棺)을 넣고, 목곽의 바깥 6면을 두껍게 석회를 덧씌워 밀봉하는 형태이다. 즉 목관, 목곽, ...

 

 

창산군(昌山君) 장관(張寬) 개국원종공신록권(보물 726호)
태조 4년(1395)에 昌山君 張寬에게내려진 원종공신록권(보물 726호) 조선 태조 4년(1395)에 전 봉익대부밀직부사(前 奉翊大夫密直副使) 상호군(上護軍) 창산군(昌山君) 장관(張寬)에게 사급(賜給)한 ‘개국원종공신록권’인데, 1981년 7월 15일에 보물 제 726호로 지정된 것이다. (길이 67.6m, 폭 3.4m)공신녹권이란 공신으로 인정하는 증서를 말하는데, 이것은 태조 4년(1395)에 창산...

 

 

창녕장씨 칠세제단비(昌寧張氏 七世祭壇碑)
창녕군 부곡면 부곡촌 뒷산에 있으며, 9세(世) 휘 구성(九成)으로부터 15세 휘 자 홍(自洪)까지 7대 10위(배위 3위 포함)에 대한 상하 좌우의 산재(散在) 묘소가 임 진왜란으로 비석과 표석이 없어져서 위차(位次)를 알지 못하므로 이에 제단을 설 치하여 대대로 세일제(歲一祭)를 받들어 왔는데, 지난 1979년에 후손 눌암공 휘 두한(斗翰)이 비문을 지어서 세운 것이다. 창녕 부곡...

 

 

고강서원 유허비(遺墟碑)
창녕군 고암면 괴산리 소재의 옛날 고강서원의 터에 세운 유허비(遺墟碑) 인데, 비문은 순재(醇齋) 김재화(金在華)가 지었고 글씨는 우인(于人) 조규철(曺圭喆)이 썼다. 고강서원 유허비 (창녕군 고암면 괴산리 소재) 고강서원 유허비 전면 (醇齋 金在華의 글, 于人 曺圭喆의 글씨)

 

 

증도사 장시행 효행비(贈都事 張是行 孝行碑)
창녕군 고암면 대암리에 있었으며, 검암(儉庵) 손전(孫佺: 1634-1719)이 짓고, 아울 러 비문의 글씨까지 써서 숙종(肅宗) 조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창녕현지』에 기록되어 있다.

 

 

감호정
창녕군 유어면 미구리(尾九里)에 있으며, 장령(掌令) 휘 우심(友心)과 주부(主簿) 휘 우진(友軫)을 위하여 세운 정자인데, 후손 병기(炳基), 병후(炳?) 등이 1963년에 건립한 것이며, 창녕인 후당(厚堂) 성순영(成純永)의 기문이 있다. 장령공, 주부공을 추모하여 건립한 감호재(현판: 克菴 李基允 書) 1963년에 건립한 감호재 전경 (창녕군 유어면 미구리 소재)

 

 

용암재
창녕군 고암면 원촌리(元村里)의 서암(西巖)에 있으며, 처사 휘 재방(再房)과 처사 휘 재복(再復)을 위하여 후손 준호(駿昊)가 건립하였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 하여 소실되자 후손 권표(權杓) 용표(龍杓) 등이 1976년에 중건하였다.

 

 

팔효각
간암재(澗巖齋) 앞 동편에 있다. 팔효각 안에는 창녕장씨의 연 6세에 걸친 8효자 의 사적을 기록한 ‘하산장씨육세팔효기실비’(夏山張氏六世八孝紀實碑)가 있으며, 비문은 용인인(龍仁人) 현산(玄山) 이현규(李玄圭)가 지었다. 이 건물은 1949년에 세워진 것이다. 6세에 걸쳐 8효자가 행한 효행을 기념하여 1949년에 세운 효자각의 정문(不?門) 팔효각의 내부 팔...

 

 

간암재
창녕군 고암면 간적 마을 입구에 있으며, 암계공, 청계공 부자를 추모하여 설립한 것이다. 이 재실은 고강서원이 조령(朝令)으로 훼철되고 6년이 지난 1873년에 후 손 휘 명언(命彦)이 고강서원의 옛 재목(材木)을 모아서 건립한 것인데, 현재의 건 물은 1916년에 중건한 것이며,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의 중건기문(重建記文)이 있다. 암계공, 청계공 부자를 추모하여 건립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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