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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장씨 족보에 대해서는 우리 문중의 형성이나, 혈연의 계통 구비 등이 일찍부터 존재했음을 판단할 때, 조선초기부터 족보의 필사본이 있었을 것으로 보여지나,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영조 29년(1753) 당시 암계공(巖溪公) 자손이 작성해 둔 필사본 『하산장씨세보』가 현존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족보 인쇄본은 영조 39년(1763)에 순천인(順天人) 장명천(張命天)이 편한 『장씨족보』에 우리 창녕장씨가 처음으로 옥산파(玉山派: 仁同), 순천파(順天派), 단양파(丹陽派), 울진파(蔚珍派), 흥산파(興山派; 興城), 화산파(花山派: 安東), 창녕파(昌寧派), 결성파(結城派) 등 8派(本)에 포함되어 전체 5책으로 합본, 간행하였는데, 이 족보의 범례를 보면 창녕파의 시조는 하성군(夏城君) 장일(張鎰)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다가 창녕장씨 단일 족보로는 1844년에 장명석(張命錫) 등이 편성하고,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성대진(成大璡)의 서문을 받아서 창녕 고강서원(高岡書院)에서 간행한 『하산장씨족보』가 초간본이며, 이 책을 간행한 년대가 갑진년(1844년)이므로 일명 갑진보(甲辰譜)라 하였다.

창녕장씨 족보 인쇄본은 갑진보 이후로 1875년에 장명언(張命彦) 등이 편성하여 간행한 을해보(乙亥譜), 1910년에 간행한 경술보(庚戌譜), 1948년에 간행한 무자보(戊子譜), 1973년에 간행한 계축보(癸丑譜)가 있고, 지난 2003년에 간행한 계미보(癸未譜)가 있어서 총 6차례 간행한 사실이 있다.

족보의 편찬주기는 대체로 1세(30년)이며, 편찬은 문중에서 각 파별로 학식과 덕망 있는 자를 선정하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편찬하는 것이다. 족보의 수보(修譜)에 대한 명분은『禮記』의 “어버이를 섬기고 조상을 높이며, 동종(同宗)을 공경하고 일족(一族)을 모은다.(親親 尊祖 敬宗 收族)는 의식(意識)에 따른 것이다. 족보를 편찬할 때 항렬(行列)을 중시하였으며, 족보에 자녀를 수록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대체로 조선초기와 중기에는 남녀 출생순으로 편성하는 종년차법(從年次法)을 적용하였으나 조선후기로 오면서 남자를 여자보다 먼저 표기하는 선남후녀법(先男後女法)을 적용하였는데,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하늘은 높이고 땅은 낮추어야 건곤(乾坤)이 정립된다.”(周易曰, “天尊地卑 乾坤定矣”)라는 이른바 귀천 명분론(貴賤名分論)에 입각하여 편성한 것이다. 그리고 족보의 개인별 행적을 수록할 때 4자 또는 8자 단위로 보평(譜評)을 넣기도 하는데, 이 보평은 족보 편찬위원회에서 논의하여 기록하였다.

족보를 편찬하는 것은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고 족의(族誼)를 다지는데 있다. 우리는 족보를 통하여 선대의 사행(事行)을 접하고, 전통 가문으로서의 자긍심 고취와 가문의식을 함양하게 되며,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족보는 그 어떤 책보다 가치 있는 자료라고 할 것이다.

끝으로 족보 편찬과 관련하여 우리는 새로운 가문의식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는 과거 전통 사족(士族) 중심의 가문의식에서 탈피하고,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매사 긍정적인 사고와 올바른 자세를 갖고 자신의 능력에 맞게 최선을 다하며, 또 자손들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학자 가문, 문학자 가문, 행정가 가문, 과학자 가문, 법조인 가문, 의사 가문, 기능인 가문, 전통공예 가문 등, 어떤 한 분야에 관심 갖고 후대까지 뿌리를 내린다면, 우리 문중 또한 전체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