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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씨(張氏)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시대에 귀족계층이라 할 수 있는 육두품(六頭品: 得難)의 성씨에 李, 崔, 金, 鄭, 張, 孫, 裵씨 등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 장씨는 신라 귀족으로서 그 성씨의 역사가 매우 깊다고 하겠다.

신라시대 저명인사로는 헌덕왕(憲德王) 14년(822)에 웅주도독(熊州都督) 김헌창(金憲昌)의 난을 진압한 일길찬(一吉?) 장웅(張雄)과 신무왕(神武王) 1년(839)에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로 감의군사(感義軍使)와 진해장군(鎭海將軍)에 봉해진 장보고(張保皐), 그리고 경애왕(景哀王: 924-926) 때 병부시랑(兵部侍郞)을 지낸 장분(張芬)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경상도 안동지방에서 권행(權幸), 김선평(金宣平)과 함께 고창성(古昌城)을 지키며,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후백제를 파하는데 크게 공을 세운 장정필(張貞弼: 초명 吉)이 유명하다. 고려 태조는 이 3인에게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으므로, 후인들이 이 분들을 삼태사(三太師)라 칭하였다. 그 가운데 장태사공은 본관(本貫)을 달리하는 대부분의 장씨의 족보에서 동국(東國) 장씨의 도(都) 시조로 삼고 있다. 그런데 태사공에 대하여 상계(上系)를 살펴보면 그가 중국에서 동래(東來)한 것으로 되어 있고,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현손(玄孫)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장씨는 수효가 매우 많아져서 여러 갈래의 본관(本貫)이 형성되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장씨(張氏)의 총 본관수가 245 본(本)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후대로 오면서 대부분의 본관이 대동(大同) 통합되었으므로, 현재는 인동(仁同), 안동(安東), 창녕(昌寧), 순천(順天), 울진(蔚珍), 단양(丹陽), 흥성(興城), 결성(結城), 덕수(德水) 등, 20여 본만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덕수장씨와 절강장씨는 귀화성씨로 알려져 있다.

창녕장씨(昌寧張氏) 본관(本貫)에 대해서는 창녕의 옛 이름이 하성(夏城)에서 하산(夏山)으로, 다시 창녕(昌寧)으로 변천되었고, 시조 장간공이 하성군(夏城君)으로 봉군된 연유에 따라 지금까지 창녕장씨와 하산장씨(夏山張氏)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창녕장씨의 계통에 대해서는 세월이 오래되어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대체로 창녕장씨는 고려의 창업공신으로서 삼태사(三太師)의 한 사람인 장정필의 후손으로 보고 있고, 문헌에 따라서는 태사공 6대손 을파(乙波)가 하산군(夏山君)에 봉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고려 원종 때 재신(宰臣)이며, 외교가인 장간공(章簡公) 장일(張鎰)이 하성군(夏城君)에 봉군되었으므로, 창녕장씨는 현재 이분을 시조로 삼고 있다.